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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련 칼럼]소중한 보물들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7/11/22 [10:55]

[한국인권신문]가을 하늘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에 살포시 눈을 뜬다.
조잘대는 새소리는 바람타고 하늘로 오르더니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 귓가를 간지럽히고 환한 햇살에 기지개를 펴며 청아한 아침을 맞이하니 그저 그저 감사다.


오늘은 무슨 즐거운 일들이 있으려나?   기대하며 맞이해 본다.
음악은 내가 어릴 때부터 유난히 좋아했고 맹목적으로 사랑을 퍼부었던 장르이다.
부모님이 걱정해도 밥 먹을 때도 잊고 음악에 푹 빠져 지냈다.
사춘기에는 음악을 통해 위로받고 사랑하고 소통하며 캄캄한 미래를 향해 돌진해 나갔고 모진 고난의 감정을 정서적으로 풀며 헤쳐 나오는 당돌한 20세기 소녀였다.

 

음악은 나를 꿈꾸게 했고 춤을 추게도 했고 하늘을 날게도 했으며 어렵고 슬픈 일도 모두 견디어 내게 하는 마술과도 같은 힘이 있었다.
음악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두렵고 어두웠을까?
콩나물의 선율들이 무미건조한 생활에 활력소가 되고 비타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음악은 어느새 나의 삶 깊숙히 파고 들어와 행운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고 평생 친구가 되어 기쁨의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소리를 매체로 하는 음악은 음의 높낮이와 박자를 통해 표현하는 예술이며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동요에서 고전음악까지 클래식 음악과 사람 목소리로 연주하는 성악 오페라까지 내 삶을 포근히 감싸 주며 다가왔다.
요즘은 다양한 색채와 파워풀한 열정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으며 불꽃같은 연주로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 내며 무대를 장악하는 남성 4중창에 매료되어 있다. 동적이고 소리를 소재로 순수성과 시간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시간예술이라 불리는 음악은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나타내며 예술 활동으로 꽃 피운다.


1970년대부터 후학을 양성하며 수없이 많은 제자들을 만나며 다양한 연주회와 음악회를 하고 반주와 지휘를 하며 음악과 벗 삼아 호흡해 왔다.
좋아하는 일을 맘껏 즐기고 직업으로 갖는 일은 생에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나의 미래를 바꾸어주고 풍요롭게 하는 음악이 내 생에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또한 음악을 통해 많은 귀한 인연들도 만나는 보너스까지 얻게 되었다.


얼마 전엔 미국에 사는 제자에게 전화가 왔다.
요번 한국 방문 때 꼭 만나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는 전화였는데 어찌나 떨리고 설레던지 문득 지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엊그제 일 같은데 처음 만난 지가 수 십 년 ~~  
이제는 불혹의 나이를 지난 친구들도 있으니 어쩜 세월이 그렇게도 빠른지 생각할 틈도 없이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모처럼 옛 추억에 빠져 보물섬 여행을 시작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멋지게 살아가는 내 귀한 보물들 ....
그들은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소중한 보물이며 보석이다.
드디어 미국에서 온 제자를 만나러 가는 날 ~ 
많이 뚱뚱해졌다며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어리광이다.


어떻게 변했을까?   설레임을 가득 안고 만났다.
만난 순간 젊음 넘치는 멋진 어른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그저 예쁘기만 하다.
환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사랑스런 제자는 어릴 적 모습처럼  다가와 빛깔도 곱고  아주 세련된 꽃다발을 내게 안겨주니 그 모습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오랜 시간 떨어졌다 만났지만 엊그제 만난 것처럼 지난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하, 호호’ 끝없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도 예전엔 철없는 어른이라 부족한 것 투성이었지만 그래도 아이들 눈에는 커다란 산으로 보였던지 여전히 활동하는 나를 당연하고 든든하다 생각해 주니 부끄러움과 감사함으로 미묘한 감정이 얽킨다. 지금은 미국에 돌아간 제자의 가정에 큰 축복이 넘치길 기도해 본다.


내 생애 첫 번째 제자는 6살부터 피아노를 배워 러시아 국립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국내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피아니스트였다. 귀국 독주회부터 듀오 연주회, 개인 독주회까지 음악회를 하면 내가 연주하는 것보다 더 긴장되고 떨려 마음 졸이며 들어야 했지만 뿌듯한 경험으로 항상 흐뭇하기만 했다.


국제 콩쿨에 나가 입상은 못했지만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 친구도 있었고 어떤 아이는 발육이 너무 늦어 잘 적응하지 못하여 여러 가지 교습법과 다양한 훈련으로 어려움 끝에 피아노를 전공하여 지금은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뛰어난 재질을 보였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수업을 중단하고 레슨하는 창가에 매일 와서 한참을 듣고 가서는 내 일거수 일투족 엄마에게 얘기하며 운다고 하여 장학생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중학교 가서 사춘기에 접어들며 일진회에 들어갔다가 엄마가 일진회 탈퇴 조건으로 너가 하고 싶은 것 무엇이든 들어 준다고 하니 ‘피아노’라고 하여 어려운 형편 가운데 다시 나를 찾아와 음악과 친구가 되며  결국 일진들에게 매를 맞고 탈퇴하기도 했다. 피어싱을 이곳 저곳 꽂고 다니던 아이, 가출도 하였지만 어려운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결국 음악을 전공하고 지금은 시집가서 잘 살고 있기도 하다.  


어떤 제자는 어느 날 손목에 반창고를 붙이고 왔는데 느낌이 이상하여 무심결에 ‘너 담배 불로 지졌냐?’ 고 물어 봤더니 어떻게 알았냐고 술술 대답한다. 순간 너무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전문가도 아닌 내가 상담까지 하며 그 어려운 고비 고비 순간을  잘 넘기고 멋진 엄마가 된 것 보면 감사하고 고맙기도 하다. 청소년 시절은 무조건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찰나의 어려운 순간을 잘 넘겨줘야 할 것 같다.


어떤 친구는 무서운 할아버지 때문에 늘 기가 죽어 있었는데 자신감을 주며 칭찬과 함께 많은 무대 경험를 통해 자신감을 갖게 하였더니 본인의 재능을 발휘하고 대 기업에 리더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지금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온다.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제자는 미국의 산호세 주립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에비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스카우트 되며 사회에 큰 공헌을 하고 있기도 하다. 나를 왕 이모라고 부르는 제자의 아들은 아직도 나에게 음악 수업을 받으며 건강하게 잘 자라나고 있고 며칠 전에는 아이돌이 부르는 힙합 곡을 리코더로 피쳐링하여 보내면서 음악을 함께 공유하며 즐겁게 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제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도 연락하는 제자들이 있고 소식이 궁금한 제자들도 있고 ...
기억을 떠 올리며 이야기하다 보니 수없이 많은 아이들의 모습이 끝없이 생각나며 과거를 향해 줄달음치게 된다.


작지만 소중한 인연들이 귀한 보물섬처럼 쌓여 가며 내 생애 최고 선물이자 소중한 보물이 되어가고 있다.
“사랑하는~  얘들아!   어디에 있던지 모두 모두 행복하거라!
그리고 연락해!  연락하면 맛난 밥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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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22 [10:55]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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