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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련 칼럼] 내 인생의 아름다운 동행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7/09/13 [13:27]

[한국인권신문=안현희] 대한이 소한의 집에 놀러갔다 얼어 죽는다는 속담처럼 절기 중 가장 춥고 깊은 겨울밤에 마음 고운 친구와의 동행 이야기로 따뜻한 인생을 노래하는 삶의 어느 한 페이지를 열어 본다. 우리의 삶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내가 살아가는 인생길이 풍요할 수도 있고 빈곤할 수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는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적 집단이다. 사람과 만나고 접촉하지 않고는 하루도 경쟁 사회에서 영유해 나갈 수가 없으며 나는 늘 그 한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게 된다. 우리는 그 사회 속에서 좌절과 실패를 거듭하며 인생을 배워가기도 하지만 평생 비결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한데 나는 다행히 희로애락의 모순과 갈등 속에서도 하늘의 찬란하게 빛나는 별처럼 아름다운 우정을 만났고 이제는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소중한 보물 단지로 소장되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다.

‘우정은 풍요를 더 빛나게 하고 풍요를 나누고 공유해 역경을 줄인다.’라는 말처럼 귀한 사랑을 가진 친구를 만나면서 나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의욕과 희망으로 함께 베풀고 나눔을 알게 되었고 서로에게 감사해하고 행복해 하니 덕분에 나의 인생길은 황금 길로 변하기 시작했다. 평생을 살아가며 속마음을 나누고 함께 할 친구가 둘 셋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 하는데…..

큰 아들이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날 교회 집사님이 나의 아들과 동갑짜리 외동아들을 데리고 와 내가 운영하는 음악 학원에 등록을 하였다. 소중한 친구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깔끔한 성격의 친구는 누구에게나 조금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늘 배려하고 나누기를 좋아하였고 자녀들은 초등학교 동기 동창으로 그때부터 우리는 매사 모든 일에 서로 의논하고 많은 일 들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 어느 날 누군가 엉엉 울면서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전화를 하였다. 나는 잘못 걸려온 전화인줄 알고 황당해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여동생이 ‘부들부들’ 떨며 친정어머니 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영원히 함께 계실줄 알았던 나의 어머니! 우리 인생의 숨결이 이렇듯 허무하게 바람처럼 지나갈수 있나하며 슬픔에 잠긴채 너무도 황망해 하며 장례식을 치르고 정신 줄을 놓고 있었는데 친구가 찾아와 ‘내가 엄마 처럼은 못하겠지만 도와 줄테니 어서 일어나라’며 음식을 해다 주고 빨래를 도와 주었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천식을 앓고 계시면서도 맏인 저에겐 사랑과 정성으로 반찬을 해다 주시며 ‘우리 딸 나 죽으면 누가 김치.고추장 된장 해다 주고 반찬은 어떻하나 하시며 날마다 기도 하셨었다. 그 기도가 응답되었는지 정말 엄마처럼 음식 솜씨도 좋고 손도 넉넉하고 사랑 많은 친구를 보내 주셨나 보다 그후 그는 우리집 먹거리를 챙겼다 그의 음식은 요술쟁이 같았다.

나의 큰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친구 아들과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학교에 저녁 급식은 안 되어 저녁밥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야 했는데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사 먹게 하였더니 그가 공부하는 아이들은 따뜻한 밥 먹여야 된다며 학급도 다른 우리 아들 도시락까지 따로 해주었다. 엄마들은 자식이 어디 나가 밥 한 끼라도 먹고 오면 그것처럼 고마운 것이 없는데 그 긴 시간 단 한 번도 힘든 내색 없이 환한 미소를 띠며 사랑을 전하는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다.

또 천사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씩 친정아버지를 오시게 하여 최고로 좋은 한우로 불고기를 항상 재어 놓고 대접하였고 멋쟁이 셨던 부친께선 흰 바지에 흰 구두를 차려신고 적은용돈 이라도 챙겨 드리면 어린애처럼 좋아하시며 신이 나셔서 아버지 친구들을 만나서는 딸 자랑을 하시니 본의 아니게 친구 덕분에 효녀 소리까지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감사함 뿐이다. 큰 아들이 고3이 되었을 때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내 여동생이 많이 힘들어 하며 일어나지 못하는 걸 보더니 그는 여동생에게도 2년이 넘도록 돌봐주었다.

그의 사랑은 무조건이었다. 내가 무슨 복이 많아 이런 친구가 내 곁계시는가 난 아무 것도 못하는데 친구 덕분에 효부가 되기도 하고 넉넉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내가 너무 고맙다고 하면 난 다른 거 못해 주니 이것으로 대신 하는 거라며 오히려 겸손해 한다. 나의 고난을 함께 나누어지고 나를 이끌어 주며 나에게 기쁜 일이 생기면 나보다 더 기뻐하며 위로 끌어 올려주는 사랑의 메신저이기도 하다. 내가 가끔 입맛이 없어 하거나 감기에 걸려 앓고 있으면 힘내야 한다며 삼계탕에 호박죽에 팥죽까지 쑤어오곤 했다.

가끔 우리 집에서 지인들이 식사를 하게 되면 음식이 맛있다며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 볼 때면 옆 사람들이 거들며 ‘아마 조 집사님이 했을 거야’ 하며 음식 못한다고 광고까지 해준다. 그래도 나는 즐겁기만 하다. 우리 가족과 친지들 지인들 사이에서는 그는 유명 인사이자 쉐프이다. 그는 음식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 빠르고 잘하는 특별한 재능과 은사가 있다. 내가 하루 종일 꼼지락 거리는 일도 그는 2~3시간이면 끝을 내고 교회 성전의 대형 꽃꽂이를 2군데 꽂는 일도 다른 사람은 5~6 시간 걸리는 것도 그는 1~2 시간이면 다 꽂아내는 탁월한 손재주와 능력이 있다.

결혼 전 나는 몸이 몹시 약하고 예민하여 조금만 마음이 불편하면 먹은 것이 전혀 소화가 되지 않고 며칠 동안 밥을 먹지를 못하는 신경성 위장병과 감기만 걸려도 며칠씩 앓곤 하여 늘 기운이 없었고 몸무게는 42키로 였다. 결혼을 하고 임신 중독증으로 걸음조차 걷지 못할 정도로 몸이 불어 고생을 하면서도 몸 관리를 할 줄도 몰랐었고 먹고 살기에 바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몸이 점점 불어나 아이를 낳은 후로는 순간적으로 힘쓰는 일은 좋아졌지만 여기저기 살이 붙어 피곤하였다.

집에서 가까운 시장을 가도 물건 살 생각은 안하고 앉을 곳만 찾고 겨우 장보고 나면 택시를 타야했으며 집에 와서는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환자아닌 환자였다. ‘내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빠지기도 하였다. 갈수록 몸이 힘들고 피곤하여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약을 먹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점점 몸이 무거워지고 힘들어지던 약 30년전에 일이다. 30대 후반 어느 날 그에게 유언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음악선생님 이다보니 늘 화장을 하고 있었기에 학부모님 들은 건강하고 튼튼한 줄 아는데 혹 내가 쓰러지거나 별안간 죽게 되면 원래 몸이 많이 안 좋았다고 설명해 주라고 관은 꼭 꽃으로 장식해 달라며 유언했었다. 놀란 그는 걱정이 되었던지 기도를 하며 나의 몸을 만져 주기 시작했다.

그가 나의 어깨에 손만 대면 나는 펄펄 뛸 정도로 아팠고 손을 댄 곳엔 금방 시꺼먼 멍이 올라와서 한동안은 아파서 손을 대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열흘 정도 지나면 아프던 곳이 신기하게 좋아졌다. 그는 1년이 넘도록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금씩 만져주었고 너무 신기한 것은 만져준 곳은 아프지 않게 되었고 나중엔 시원하기까지 했으며 걸어 다니는데 피곤함도 없어졌다.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 다리는 늘 부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붓기도 내리고 손발의 냉증도 완화되었고 왠만한 것은 다 좋아졌다.

지금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걸어 다니고 운동도 하고 쇼핑도 할 수 있음은 그의 사랑으로 만져진 기적이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수십 년 동안 베풀어 온 사랑은 자기를 돌보지 않고 항상 넉넉하고 넘치게 베풀며 정성을 다해 끝없이 베푸는 사랑 덕분이다 보답은 바라지도 않고 한 길만 바라보며 한없이 나누는 엄마 같은 무조건적 사랑, 때론 친구처럼 어떤땐 멘토가 되어 기쁨 넘치는 사랑을 주었다.

내가 가끔 성숙되지 못하여 척박한 사회생활 속에서 사소한 언어의 상처로 고뇌를 겪기도 하고 갈등 속에서 상처받고 힘들어 하며 ‘난 인복이 없나봐 사람들이 날 힘들게 해 하고 투정을 하면 언제나 하는 말이 ‘내가 있잖아 늘 한결 같이 그렇게 말을 하며 ‘넌 잘하고 있다.’고 긍정의 힘을 실어준다. ‘난 살림을 너무 못해 어떤 때는 답답해’ 라고 투정하면 ‘넌 아이들을 잘 가르치잖아’ 하며 위로를 한다.

돈 벌어서 자기 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칭찬을 하니 그 순박하고 순수한 마음이 얼마나 따사롭고 예쁘던지 가족이 아닌 친구가 이처럼 배려하고 베풀며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필자가 이글을 쓰면서 부끄럽기 짝이없지만 이토록 끝없는 사랑, 한없는 사랑을 선물 받은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행운아가 아닐까 난 늘 하나님께 감사한다. 많은 것을 소유하지는 않았어도 그대로 인하여 작은 평화의 노래를 부른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나도 나눔의 실천을 배워본다. 한 걸음 한 걸음 남은 여생을 함께 동행하며 내 생애 마지막 순간에 사랑으로 만들어진 추억의 조각를 열어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으리라 친구야!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그대 있음으로 내 인생이 따스했고 그대 존재함으로 내가 평안했으며 그대 사랑으로 내가 행복했다오!
아름답고 소중한 가르침 사랑을 머뭇거리지 않고 나누고 또 나누며 살겠노라고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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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13 [13:27]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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