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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련 칼럼] 일조(兆)의 행복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7/09/01 [11:38]

[한국인권신문=안현희] 첫 눈이 내리던 2016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끝자락에 오랫동안 연락 없던 친구의 반가운 전화를 받고 모처럼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구르는 낙엽만 보아도 ‘까르르’ 웃는 감수성 예민한 단발머리 소녀 시절에 만나 중, 고교 시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가 되면 같이 밤새며 공부한다고 이집 저집 돌며 엄마가 해주는 간식과 밥을 먹으며 시험 공부한다고 모여 떠들고 놀던 친구들 중 한 명이다.

 


때로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에 빠져 인생무상, 삶의 회의를 외치기도 하고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 텔레스를 논하며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의 두 빛을 잡고 함께 고민하고 웃음을 나누던 허물없는 친구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의 인생은 길고 긴 시간이 돌아 수십 년이 흐르게 되었고 나의 친구들은 모두 각자 처해진 환경에서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멋진 노년 할머니들이 되어 있었다.

 


특별히 오늘 만나는 친구의 남편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는 대기업에 대표이사직까지 맡게 된 대단한 사람이 되었고 내 친구는 조용히 남편 내조 잘하는 교양 넘치는 사모님이 되어 있었다. 그 친구 참으로 대단하고 대견하였다. 가끔 친구들 자녀 결혼식이나 신문 이나 매스컴을 통해 소식을 들으며 지냈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나에게 건강식 점심을 사준다고 하여 신이 났다.

 


옛 추억의 기억을 찾아내며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다 현재는 친구 남편이 대기업을 퇴직한 터라 뭐라 위로하고 용기를 줄까 고민하다 “너, 참 대단하구나! 벌면서 쓰는 것도 힘이 드는데 결혼한 딸이 살 집까지 마련해 주는걸 보니 살림을 무척 잘하나 보다! 하여간 너희 남편이 자수성가하여 높은 자리에 오른 것도 너가 큰 일조 했네! 하여간 참 대단하다!”

  

나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는데 별안간 친구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말 나온 김에 확인할 거 있다며 비장한 모습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에공, 이건 또 뭔 일이여!’
맛있게 밥을 먹다 밥알이 딱 곤드서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 친구 장례식 장에서
“너, 1조 있어? 라고 했지!”
“뭔 1조? 내가 언제?”
“1조가 뭔데? …”
기억에도 없는 말을 했다며 다그치는 모양이 뭔가 단단히 오해가 생긴 것 같다.
‘1조’ 라는 말은 내 평생 입에 담을 말이 아니고 1조가 얼마나 큰 돈인지도 모르는데 왜 그런 말을 했겠냐고 아무리 변명을 해도 2명의 친구들이 같이 들었다고 하니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져 혼란스러웠다.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늘 가까운 친구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런 오해를 할 수 있을까? 가만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내가 ‘남편 내조 하는데 일조 했다!’ 라고 한 말을 ‘1조원 있냐?’로 들은 모양이다. 난 칭찬으로 한 말인데 비아냥처럼 들었나 보다.
푸하하 ~~ 웃음이 나왔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지만 다 듣고도 ‘일조 했다.’ 를 ‘1조 있냐?’로 듣고 분개했다니 내가 이걸 어찌할꼬?
“도대체 1조원에 동그라미는 몇 개나 붙는 거야!”
“셈 공부 다시 해 봐야겠어!”
한참을 투덜대다 미진한 생각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 1조원 통장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면 어떨까?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써 보지 못한 돈은 내 돈이 아니라고 하는데 있어도 써보지도 못할 돈 1조원를 통장에 있다고 생각을 바꾸면 내 마음은 상상의 나래 속에 왕부자가 되지 않을까?
그럼 생각도 여유롭고 부유해져 조금은 건방지게 인생을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후후..

  


꿈이라도 그냥 마음이 즐겁다! 난생 처음 내 인생과는 연관도 없는 1조라는 단어를 내 평생에 원 없이 이렇게 많이 읊조려 보았으니 1조의 행복을 실컷 즐기고 만끽해 본다.
내가 사춘기 때 아버지 사업 실패로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어봤다.
물질의 풍요가 자녀 교육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물질이 없으면 밥도 굶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어린 나이부터 깨달아서 경제관념에는 성숙한 편이었다.

 


어느날 가족처럼 지내는 언니가 너무 나누어주길 좋아해서 하루는 노후 준비는 해야 한다고 이율 높은 증권 회사 통장을 만들어 조금씩 적금을 넣고 20% 이상 이자를 받게 하고 통장 관리도 해주어 몇 년 후엔 13평짜리 아파트를 사게 되었고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 고층 아파트 30평대를 가지게 되었다. 이 언니는 한 동안 나를 ‘펀드 정’ 이라 불 렀고 나도 그 단어를 은근히 좋아하고 즐겼다.
사실은 아직도 펀드는 잘 모르는데 말이다. 나로 인해 아파트 한 채 건졌다고 지금도 생각나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며 고마워한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는 자그마한 행복이고 기쁨이다.
어느 날은 후배가 와서 이혼을 하겠다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워낙 마음이 상했는지 고집을 꺾지 않아서 가진 것은 있냐고 물어보니 한 푼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돈 한 푼 없고 직업도 없이 어찌 살려고 하냐며 1,000만원 모을 때까지는 그냥 참고 살라고 하고는 함께 은행에 가서 돈이 생길 때마다 입금할 수 있는 1년 만기 적금 통장을 만들어서 적금을 들게 하고 생활비를 쪼개 현금을 나에게 가지고 오면 내가 은행에 다니며 입금을 해 주곤 했다. 어떤 때는 돈을 안 가져 오면 빗쟁이 독촉하듯 하기도 했었다. 5만원 10만원 20만원 생기는 대로 은행을 대신 드나들며 모아온 돈들이 6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나니 어느덧 통장에는 7,000만원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후배의 장래를 위해 열심히 은행을 대신 다녀주고 나니 이 돈 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쁘던지 내 돈은 아니지만 마음이 든든하고 작은 희망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통장을 만들게 하여 저축을 도와준 내 스스로가 너무 기특해서 ..

 


그러던 어느 날은 후배가 은행에서 7,000만원을 찾아와 나에게 보관하고 있으란다.
일이 생겼는데 아무도 믿을 수 없지만 나만은 믿을 수 있다며…
‘에그머니나 이렇게 큰돈을 뭘 믿고 나한테 맡기는 거지?’

  


그 일 이후 난 스스로에게 칭찬하며 내가 이 정도로 인정을 받고 살고 있으니 남은 여생 동안은 더 열심히 바르게 잘 살아야 된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물론 고비를 잘 넘긴 후배는 지금은 온 가족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인정받는다는 이 소소한 일상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고 내 인생의 큰 선물이기도 하며 1조원 이라는 허상보다 훨씬 부유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간다.

  


도덕적 신념과 인격적 양심을 갖고 스스로 성찰하고 역사의 한 귀퉁이를 채워가는 나는 아직은 쓸 만한 존재인가 다시 한 번 뒤돌아보고 확인하며 노력한다.
이제 내 인생의 한 복판에 서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다.
그리고 긴 호흡을 내뿜어 본다.
“나~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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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01 [11:38]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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